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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혜뎐

[순혜뎐] 열일곱 김순혜 3 (← 되돌아가기) (← 이전 이야기) 다운이 순혜에게 안부를 물을 기회는 예상보다 이르게 찾아왔다. 일주일 후에 있을 가을 운동회를 위해 오늘부터 연습을 하기로 했는데, 그 뒷정리를 각 반의 반장들이 맡게 된 것이다. 다운은 반장은 아니지만 순혜가 반장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얼른 자원해서 뒷정리를 하기로 했다. '이런 일은 체육부장이 하는 게 더 맞지 않느냐, 그러니 내가 하겠다' 하는 다운을 보며, 반장은 못 이기는 척 다운에게 줄다리기용 밧줄을 넘겨주었다. 다운은 순혜가 있는 쪽을 흘끗거렸다. 가을 운동회라고 해도 아직은 날이 더워서 그런지 순혜의 볼은 조금 발갛게 익어 있었다. 순혜는 머리를 위로 질끈 올려 묶은 상태였는데, 흐트러짐 없이 단정했다. 잔머리가 삐죽삐죽 튀어나오고 땀에 젖은 머리카락이 .. 더보기
[공지사항] 순혜뎐 바로가기 링크 모음 * 아래 링크를 누르시면 해당하는 페이지로 넘어갑니다. INTRO > 창작 보고서 > 질의응답 > 더보기
[공지사항] 질의응답 * 본 질의응답은 창작 발표회에서 나왔던 질문에 감상자분들이 궁금해할만한 것들을 간단히 담아보았습니다. * 질문의 내용 및 대답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으니 감상 전이신 분들은 유의해주세요! 1. 《순혜뎐》에는 강철이라는 요괴가 등장하는데 다른 요괴나 괴물이 아닌 강철이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저희가 처음부터 강철이를 등장시키고자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단 저희는 무조건적인 "악역"이 아니라 인간과는 다른 시각의 존재, 그리고 서사를 담아낼 수 있는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여러 요괴나 괴물을 알아보는 가운데 "전설 속에 등장하는 타락한 악독한 용"이라는 강철이 눈에 띄었고, 저희는 그저 "악독한 성질"보다는 강철이 "타락하게 된 계기"에 집중하여 서사를 진행시켰습니다. 2. 조선시대의 문지기들은 대한민국.. 더보기
[순혜뎐] 신사년, 2001 (대한민국-0) (← 되돌아가기)(← 이전 이야기) 맴 - 맴 - 매미 소리가 귓전에서 울리고 타는 듯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계절. 검은 색 파일을 든 이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수십년이 지났건만, 그의 모습은 처음 대한민국에 발을 들인 때와 다름이 없었다.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신사는 이 날씨에도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소매에 달린 커프스 단추 가격만 수백만원은 가뿐히 넘길 것 같은 차림새의 그는 이런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봤더라면 혹시 이 구역을 재개발하러 온 갑부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행이라 해야할지, 딱히 밖을 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파트 단지를 느긋하게 걸었다. "그 아이의 기억 속 장소나 음양陰陽과 천기天氣의 조화를 보았을 때 금일 이 시각이 .. 더보기
[순혜뎐] 병진년, 1976 (대한민국-0.5) (← 되돌아가기)(← 이전 이야기) 병진년 유월. 그는 여전히 조선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찾고자 하는 그 제대로 된 정보도 얻지 못한 까닭이다.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그"가 기해년의 사람이란 사실까진 알아내곤 무턱대고 시간을 뛰어넘었으나, 이 곳이 "그"가 사는 나라가 맞는지도 확신이 없기에 다시 시간을 뛰어넘는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아이의 기억을 제대로 읽어볼 것을." 안타깝게도 그의 기억 속에서 결정적인 단서는 지워져버린 상태였다. 기껏해야 내가 있던 (----)년이랑 같은 기해년이라는 것 밖엔 모르잖아. 그의 귓가에서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올해는 하필 병진년이라니. 꼴사납다. 붉은 용의 해가 아닌가. 괜히 기분이 나빠진 그가 땅.. 더보기
[순혜뎐] 404 Not Found (← 이전 이야기) (다음 이야기 →) (스토리텔러 : 도민주, 양예진)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더보기
[순혜뎐] 기해년, 1959 (대한민국-1) (← 되돌아가기)(← 기해년, 조선) 쯧. 신문을 읽던 이가 불만스러운 듯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 인간들 눈에 띄어 좋을 일이 뭐 있다고 그렇게 야단을 떨었다니. 명동의 작은 다방. 새하얗고 고급진 정장에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신사의 모습에 다방 안의 여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사내들조차도 그를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생긴 것은 기생 오라비처럼 생겨서는." 한 남자 손님의 말에 신사가 신문을 살짝 내려 그와 눈을 맞추고는 생긋 웃는다. 손님의 얼굴이 여름에 잘 익은 고추마냥 붉어진다. 백의의 신사는 다시 신문을 읽었다. 글을 읽어내리는 눈매가 짙다. 신사에게 다방의 주인이 다가온다. 가슴께 달린 명찰에 설화라 쓰여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내렸다. 가만히 신사가 손에 든 신문의 날짜를.. 더보기
[순혜뎐] 돌아온 김순혜 (← 이전 이야기)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100년 전 오늘, 만세 운동의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 선생과 학생, 여성과 남성, 피 끓는 청춘과 백발의 노인들까지...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그들의 만세소리는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4월 11일 중국 상하이에 그들의 의지를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3월치고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는 청와대 행사장. 청명한 하늘 아래 모인 사람들은 단상에 선 이의 말에 몰입해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순혜는 연설 중인 무대 아래, 관객석 근처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상 없습니다.”“계속 확인해.” 동료로부터 무전을 받은 순혜의 미간이 계속 8자(八)를 그리고 있자 옆에 서 있던 후배가 사근사근 웃으며 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