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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순혜뎐] 이상한 나라의 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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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해외동포 여러분. 100년 전 오늘, 만세 운동의 현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들, 선생과 학생, 여성과 남성, 피 끓는 청춘과 백발의 노인들까지...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그들의 만세소리는 전국으로 뻗어나갔고, 411일 중국 상하이에 그들의 의지를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3월치고 따뜻한 햇볕이 쏟아지는 청와대 행사장. 청명한 하늘 아래 모인 사람들은 단상에 선 이의 말에 몰입해갔다. 검은 정장을 입은 순혜는 연설 중인 무대 아래, 관객석 근처에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이상 없습니다.”

계속 확인해.”

 

동료로부터 무전을 받은 순혜의 미간이 계속 8()를 그리고 있자 옆에 서 있던 후배가 사근사근 웃으며 다가왔다.

 

선배님, 너무 긴장하신 것 아닙니까? 어차피 행사장에 들어온 사람들은 전부 신원이 확인된 사람들이고……,

무슨 일이야 있으려고요.”

 

그의 말에 순혜는 철없는 제 후배 녀석을 조용히 응시했다. ‘한 마디라도 더 하면 널 어떻게 해버릴 테니 각오해.’ 라고 말하는 눈빛에 그는 입을 삐죽거렸다. 이 태평한 놈을 어쩌면 좋지?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설레설레 젓던 순혜의 눈이 순간 가늘어졌다. 관객석의 뒤편에 앉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

 

저 사람 누구지?”

? 누구 말씀하시는 거예요?”

저기 말이야. 관객석 뒤에. 저런 사람이 있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를 바라보는 후배의 반응에 순혜는 무전기를 손에 들었다.

 

선배님?”

잠시 확인할 게 있으니까 여기서 대기해.”

 

선배님! 작은 소리로 저를 부르는 후배의 목소리에도 순혜는 그 자리에 있으라며 손짓하고는 천천히 관객석 뒤쪽으로 걸어갔다. 앉아있던 사람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순혜를 발견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의 시야를 가리며 이리저리 빠져나갔다. 그러나 사람들의 시선은 오직 단상을 향해 고정되어있을 뿐이었다.

 

저렇게 행동하는데 관객들 중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니.

 

그 때 그의 코트 자락이 살짝 펄럭이자 잠깐, 사이로 햇빛에 반짝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설마 도검류인가? 그런 것을 이 곳에 반입할 수 있을 리 없을 텐데. 순혜는 그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순혜의 걸음이 조금씩 빨라졌다.

 

수상한 사람 발견, 검은색 코트 속에 도검류로 추정되는 물건을 소지했다. 지금 행사장을 벗어나는 중, 지원 바람.”

?  (-치칙-)

흉기를 소지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람 발견, 현재 청와대를 벗어났……, 이 정신 나간 놈들아! 우리 팀 숫자가 몇인데 아무도 대답을 안 해!”


저 놈 잡고 나면 무전기부터 싹 다 바꿔달라고 말해야지. 선배고 후배고 무전기 핑계 대는 짓 다시는 못 하게 할 줄 알아. 순혜는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그를 따라 갔다.

 

그나저나 정말 이상해. 저 사람은 언제 경비까지 뚫고 나갔지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는 마치 순혜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이 슬쩍 뒤로 돌았다. 그는 입모양으로 무언가 말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는 신무문을 통해 경복궁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핏 그의 코트 자락에서 보이는 것이 꼬리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상함을 느낄 겨를도 없이, 순혜는 그 뒤를 따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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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 도민주, 양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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