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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순혜뎐] 병진년, 1976 (대한민국-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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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진년 유월. 그는 여전히 조선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찾고자 하는 그 제대로 된 정보도 얻지 못한 까닭이다.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그"가 기해년의 사람이란 사실까진 알아내곤 무턱대고 시간을 뛰어넘었으나, 이 곳이 "그"가 사는 나라가 맞는지도 확신이 없기에 다시 시간을 뛰어넘는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아이의 기억을 제대로 읽어볼 것을."


안타깝게도 그의 기억 속에서 결정적인 단서는 지워져버린 상태였다.


기껏해야 내가 있던 (----)년이랑 같은 기해년이라는 것 밖엔 모르잖아.


그의 귓가에서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올해는 하필 병진년이라니. 꼴사납다. 붉은 용의 해가 아닌가. 괜히 기분이 나빠진 그가 땅을 걷어찼다. 바닥의 모래가 회오리치며 오르자 그가 아차하여 힘을 거두고 주변을 살피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멀리, 혼자 서 있던 사내 아이 하나만 뺀다면.


"성가시군."


그는 사내 아이에게로 성큼성큼 다가가 기억을 지우기 위해 눈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의 머릿속으로 흘러들어온 기억은 아이의 기억이 아니었다.


아니. 아이의 기억은 맞아. 

다만 이 기억은 과거의 것이 아니라 미래의 것이로군. 

어찌 된 일이지? 잠깐. 기억 속의 이 사람은―?  


그는 눈 앞에 있는 사내 아이의 기억을 살짝 건드리곤 입에 사탕을 물려주었다. 조선에 살던 시절에 어린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던 달달한 맛을 이 시대의 방식대로 만든 사탕이었다. 그가 나름대로 인간의 것들 중에 썩 마음에 차지는 않지만 나쁘진 않다고 생각하는 맛이기도 했다.


"한데 안타깝군. 이 아이의 미래가 그저 그런 어른이 되는 것이라니."


그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려하는데 아이가 사탕을 퉤 뱉어버리곤 말했다. 이 사탕 맛 없어. 빠득, 이를 가는 소리에 아이가 천진난만하게 그를 올려다본다.


"하긴, 세상사, 어찌 매번 위인들만 있겠느냐. 어떤 이는 필연적으로 그저 그런 어른이 되기도 하고 그런 것이지."

"아저씨, 무슨 소리야?"


그는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너 알아서 살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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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 도민주, 양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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