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대한민국

[순혜뎐] 기해년, 1959 (대한민국-1)

(← 되돌아가기)

(← 기해년, 조선)




쯧. 신문을 읽던 이가 불만스러운 듯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 인간들 눈에 띄어 좋을 일이 뭐 있다고 그렇게 야단을 떨었다니. 


명동의 작은 다방. 새하얗고 고급진 정장에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신사의 모습에 다방 안의 여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사내들조차도 그를 흘끗흘끗 쳐다보았.


"생긴 것은 기생 오라비처럼 생겨서는."


한 남자 손님의 말에 신사가 신문을 살짝 내려 그와 눈을 맞추고는 생긋 웃는다. 손님의 얼굴이 여름에 잘 익은 고추마냥 붉어진다. 백의의 신사는 다시 신문을 읽었다. 글을 읽어내리는 눈매가 짙다. 신사에게 다방의 주인이 다가온다. 가슴께 달린 명찰에 설화라 쓰여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내렸다. 가만히 신사가 손에 든 신문의 날짜를 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손님, 그거 2년 된 신문이네요."

"내가 신문 읽는 것을 좋아하오."


설화의 얼굴을 본 신사의 눈이 놀란 듯 동그래지더니 이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다. 그렇군요. 맛있게 드세요. 설화의 미소에 어쩐지 주변 남자 손님들이 술렁인다. 


"아가씨 웃는 모습은 처음 보네. 그렇게 웃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앞으론 자주 웃어줘."


신사의 앞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설화에게 추파를 던졌다. 설화에게 고백하기를 몇 차례, 번번이 시원하게 거절당한 송 사장이다. 그만큼 이야기했으면 알아들었을 법도 하건만, 설화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카운터로 돌아가려하자 그가 설화의 손을 붙들었다.


"아가씨. 왜 그래? 사실은 좋으면서 튕기는 것이지?"

"송 사장님,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싫다니까요."


그의 분명한 의사표현에도 송 사장은 손을 주물러댔다. 좋으면서 앙탈은- 설화가 불쾌하여 손을 빼려하자 그가 팔을 잡아당겼다. 악! 비명소리에도 주변 사람들은 딱히 도와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차마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송 사장이 돈이 많아 평소에 높으신 분들과 친하다며 자랑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 때 신사가 입을 열었다.


"요즘 사내들은 전부 저 모양인가? 말세로군.     

"뭐야?"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가? 미안하게 되었네. 채신머리없이 여인을 희롱하기에 짐승인 줄 알았더니."

"당신,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알아야하나? 별 볼 일 없어뵈는데."


그가 송 사장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입매를 비틀어올리며 웃었다. 송 사장이 설화의 손을 놓고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해대며 말했다.


"너, 너!"

"그리고 법도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군. 반가의 규수를 아가씨라고 높여 부르면서도 말은 놓는 것이 요즘 법도인가?"


그의 말에 설화가 작게 웃음을 터뜨린다. 이제 송 사장의 화가 머리끝까지 달해서 그가 설화를 때릴 듯이 손을 높이 치들었다. 설화가 질끈 눈을 감는데, 짝- 하는 소리가 나 눈을 떠보니 송 사장이 자신의 뺨을 때린 모양이었다. 사람들이 모두 놀라고 있는데, 어안이 벙벙한 것은 송 사장도 마찬가지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더니 이번엔 설화의 앞에 무릎을 꿇어 싹싹 빌기 시작했다.

"제가…….
"제가 잘못했습니다. 감히 제가 설화 아가씨를 불편하게 만들었습니다. 앞으로 다시는 이 다방에 얼씬도 하지 않겠습니다. 만약 제가 이 다방에 다시 오면 아랫도리를 잘라버리겠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세요." 

송 사장은 그렇게 말하더니 벌떡 일어나 같은 팔과 다리를 동시에 뻗으며 부자연스럽게 걸어나갔다. 송 사장이 다방에서 나가고 설화가 신사에게 다가갔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어디서 뵌 적 있나요?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글쎄. 예전에 그 쪽이 날 선인이라 불렀던 것 같기도 하고."
"네? 선인이요?"
"아니오. 차 잘 마셨소. 아주 마음에 드오. 쌉싸래하고 검은 것이, 아주 좋구려."

신사는 씩 웃고는 일어나 유유히 다방을 떠났다.


(다음 이야기 →)




(스토리텔러 : 도민주, 양예진)


이 저작물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4.0 국제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순혜뎐] 병진년, 1976 (대한민국-0.5)  (0) 2019.06.08
[순혜뎐] 404 Not Found  (0) 2019.05.26
[순혜뎐] 돌아온 김순혜  (0) 2019.05.25
[순혜뎐] 3월 1일  (0) 2019.05.25
[순혜뎐] 3월 11일  (0) 2019.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