쯧. 신문을 읽던 이가 불만스러운 듯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 인간들 눈에 띄어 좋을 일이 뭐 있다고 그렇게 야단을 떨었다니.
명동의 작은 다방. 새하얗고 고급진 정장에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신사의 모습에 다방 안의 여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사내들조차도 그를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생긴 것은 기생 오라비처럼 생겨서는."
한 남자 손님의 말에 신사가 신문을 살짝 내려 그와 눈을 맞추고는 생긋 웃는다. 손님의 얼굴이 여름에 잘 익은 고추마냥 붉어진다. 백의의 신사는 다시 신문을 읽었다. 글을 읽어내리는 눈매가 짙다. 신사에게 다방의 주인이 다가온다. 가슴께 달린 명찰에 설화라 쓰여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내렸다. 가만히 신사가 손에 든 신문의 날짜를 보던 그가 고개를 갸웃한다.
"손님, 그거 2년 된 신문이네요."
"내가 신문 읽는 것을 좋아하오."
설화의 얼굴을 본 신사의 눈이 놀란 듯 동그래지더니 이내 부드럽게 곡선을 그리며 휘어진다. 그렇군요. 맛있게 드세요. 설화의 미소에 어쩐지 주변 남자 손님들이 술렁인다.
"아가씨 웃는 모습은 처음 보네. 그렇게 웃으니 얼마나 보기 좋아. 앞으론 자주 웃어줘."
신사의 앞 테이블에 앉은 손님이 설화에게 추파를 던졌다. 설화에게 고백하기를 몇 차례, 번번이 시원하게 거절당한 송 사장이다. 그만큼 이야기했으면 알아들었을 법도 하건만, 설화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고 카운터로 돌아가려하자 그가 설화의 손을 붙들었다.
"아가씨. 왜 그래? 사실은 좋으면서 튕기는 것이지?"
"송 사장님, 분명히 말씀드렸잖아요. 싫다니까요."
그의 분명한 의사표현에도 송 사장은 손을 주물러댔다. 좋으면서 앙탈은- 설화가 불쾌하여 손을 빼려하자 그가 팔을 잡아당겼다. 악! 비명소리에도 주변 사람들은 딱히 도와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차마 선뜻 나서기 어려웠을 것이다. 송 사장이 돈이 많아 평소에 높으신 분들과 친하다며 자랑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그 때 신사가 입을 열었다.
"요즘 사내들은 전부 저 모양인가? 말세로군."
"뭐야?"
"사람의 말을 알아 듣는가? 미안하게 되었네. 채신머리없이 여인을 희롱하기에 짐승인 줄 알았더니."
"당신, 내가 누군 줄 알아?"
"내가 알아야하나? 별 볼 일 없어뵈는데."
그가 송 사장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입매를 비틀어올리며 웃었다. 송 사장이 설화의 손을 놓고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벌떡 일어나 삿대질을 해대며 말했다.
"너, 너!"
"그리고 법도가 언제 이렇게 바뀌었는지 모르겠군. 반가의 규수를 아가씨라고 높여 부르면서도 말은 놓는 것이 요즘 법도인가?"
(스토리텔러 : 도민주, 양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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