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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순혜뎐] 신사년, 2001 (대한민국-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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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 - 맴 - 매미 소리가 귓전에서 울리고 타는 듯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계절. 검은 색 파일을 든 이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수십년이 지났건만, 그의 모습은 처음 대한민국에 발을 들인 때와 다름이 없었다.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신사는 이 날씨에도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소매에 달린 커프스 단추 가격만 수백만원은 가뿐히 넘길 것 같은 차림새의 그는 이런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봤더라면 혹시 이 구역을 재개발하러 온 갑부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행이라 해야할지, 딱히 밖을 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파트 단지를 느긋하게 걸었다.


"그 아이의 기억 속 장소나 음양陰陽과 천기天氣의 조화를 보았을 때 금일 이 시각이 분명하거늘."


외형은 기껏해야 30대 정도인데 말투는 80살 먹은 노인처럼 구니 부조화가 따로 없었다. 그 때 무언가 발견한 듯 그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멀리 벤치로 달려가 앉는 아이와 아이에게 다정하게 구는 여인. 신사는 그들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잠시 후, 아이와 비슷한 또래의 아이 하나가 벤치로 다가왔다. 그들을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빛나야, 엄마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순혜랑 놀고 있어."


빛나의 엄마가 잠시 자리를 비우자 그는 조금 더 아이들에게 다가섰다. 입가에 옅은 미소가 번졌다. 그는 손에 든 파일을 가볍게 흔들었다. 사아아 ― 순혜의 얼굴에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찾았다, 김순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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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러 : 도민주, 양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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