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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

[순혜뎐] 신사년, 2001 (대한민국-0) (← 되돌아가기)(← 이전 이야기) 맴 - 맴 - 매미 소리가 귓전에서 울리고 타는 듯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계절. 검은 색 파일을 든 이가 아파트 단지에 들어섰다. 수십년이 지났건만, 그의 모습은 처음 대한민국에 발을 들인 때와 다름이 없었다. 검은 머리를 깔끔하게 넘긴 신사는 이 날씨에도 셔츠 단추를 목 끝까지 채우고 있었다. 소매에 달린 커프스 단추 가격만 수백만원은 가뿐히 넘길 것 같은 차림새의 그는 이런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누가 봤더라면 혹시 이 구역을 재개발하러 온 갑부로 여겼을지도 모를 일이지만, 다행이라 해야할지, 딱히 밖을 나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그는 아파트 단지를 느긋하게 걸었다. "그 아이의 기억 속 장소나 음양陰陽과 천기天氣의 조화를 보았을 때 금일 이 시각이 .. 더보기
[순혜뎐] 병진년, 1976 (대한민국-0.5) (← 되돌아가기)(← 이전 이야기) 병진년 유월. 그는 여전히 조선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었다. 찾고자 하는 그 제대로 된 정보도 얻지 못한 까닭이다. 읽었던 기억을 떠올려 "그"가 기해년의 사람이란 사실까진 알아내곤 무턱대고 시간을 뛰어넘었으나, 이 곳이 "그"가 사는 나라가 맞는지도 확신이 없기에 다시 시간을 뛰어넘는 모험을 하고 싶지는 않은 것이었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그 아이의 기억을 제대로 읽어볼 것을." 안타깝게도 그의 기억 속에서 결정적인 단서는 지워져버린 상태였다. 기껏해야 내가 있던 (----)년이랑 같은 기해년이라는 것 밖엔 모르잖아. 그의 귓가에서 목소리가 웅웅 울리는 것만 같았다. 게다가 올해는 하필 병진년이라니. 꼴사납다. 붉은 용의 해가 아닌가. 괜히 기분이 나빠진 그가 땅.. 더보기
[순혜뎐] 기해년, 1959 (대한민국-1) (← 되돌아가기)(← 기해년, 조선) 쯧. 신문을 읽던 이가 불만스러운 듯 혀를 찼다. 멍청한 놈들. 인간들 눈에 띄어 좋을 일이 뭐 있다고 그렇게 야단을 떨었다니. 명동의 작은 다방. 새하얗고 고급진 정장에 깔끔하게 머리를 넘긴 신사의 모습에 다방 안의 여인들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었다. 사내들조차도 그를 흘끗흘끗 쳐다보았다. "생긴 것은 기생 오라비처럼 생겨서는." 한 남자 손님의 말에 신사가 신문을 살짝 내려 그와 눈을 맞추고는 생긋 웃는다. 손님의 얼굴이 여름에 잘 익은 고추마냥 붉어진다. 백의의 신사는 다시 신문을 읽었다. 글을 읽어내리는 눈매가 짙다. 신사에게 다방의 주인이 다가온다. 가슴께 달린 명찰에 설화라 쓰여있다. 그는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내렸다. 가만히 신사가 손에 든 신문의 날짜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