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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순혜뎐] 열매반 김순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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맴 - 맴 - 매미 소리가 귓전에서 울리고 타는 듯한 태양빛이 내리쬐는 계절. 모든 사람들이 더위에 지쳐 밖을 나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한창 쌩쌩 뛰어노는 순혜에게 여름의 뜨거움은 별 문제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순혜야, 와서 아이스크림 먹자!"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순혜가 달려갔다. 나무 그늘, 벤치 앞에 선 이는 빛나의 엄마인 미영이었다. 그가 순혜 얼굴에 난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우리 순혜 얼굴이 발갛게 익어버렸네. 안 힘들어? 오늘 날도 더운데, 그냥 들어갈까?"


안 힘들어요. 전 열매반이니까! 히히 웃는 순혜의 얼굴이 사과마냥 붉다. 그는 언젠가 열매의 뜻을 듣고는 이렇게 씩씩하게 이야기하곤 했다. 일곱살 평생에 새싹반에서 열매반이 된 것은 그에게 크나큰 자랑거리였다. 빛나는요? 순혜의 물음에 미영이 말했다. 잠깐 화장실 갔어. 미영은 순혜에게 쭈쭈바를 건넸다. 순혜가 제일 좋아하는 초코맛. 순혜는 앉아서 쭈쭈바를 벤치에 내리쳤다. 팡! 비닐포장이 뜯어지자 그는 꼭지를 톡 떼어 쪽쪽 빨았다.


"그건 그냥 버리지."

"으끕즌으으."


입에 꼭지를 물고 있던 통에 발음이 흐려졌지만 순혜가 달고 사는 말이기에 미영은 알 수 있었다. '아깝잖아요.' 순혜가 드디어 쭈쭈바의 본체를 입에 물 때 즈음, 빛나가 돌아왔다.


"빛나야, 엄마 잠깐 전화 좀 하고 올게. 순혜랑 놀고 있어."



미영이 전화를 걸며 멀어지자 빛나가 벤치에 털썩 앉았다. 빛나는 먹느라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사아아 ― 모처럼 바람이 불어 순혜의 얼굴에 드리운 나뭇잎 그림자가 물결처럼 일렁였다. 순혜는 바람에 흩날리는 빛나의 머리칼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중얼거리듯 물었다.


"머리 짧으면 시원해?"

"응?"

"나도 머리 자르고 싶다."

"그럼 잘라."

"나는 머리카락 긴 게 예쁘대."

"누가?"

"엄마랑, 아빠랑, 할머니랑 옆 집 아줌마랑……."

 

순혜는 아랫입술을 쭉 내밀더니 개구진 표정을 하고는 양갈래로 땋은 제 머리카락를 들어보였다.  


"예뻐?"

"아니."


빛나의 대답에 순혜는 웃음을 터뜨렸다. 둘이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밌게 해? 어느새 돌아온 미영의 말에 두 사람은 서로 한 번 바라보고는 외쳤다. 비밀이에요! 



(다음 이야기 →)




(스토리텔러 : 도민주, 양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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